팟캐스트 지새우는 밤의 낭만
2025년 11월 09일

인생잡담, 오늘의 이야기는 "[지새우는 밤의 낭만]"입니다. 여러분, 밤은 왠지 모르게 사람을 센치하게 만들죠. 특히 젊은 날, 무언가에 몰두하며 밤을 지새웠던 기억은 더욱 짙은 낭만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제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만화가의 꿈을 품고 밤을 하얗게 지새우던… 그때의 저를, 그리고 그 시절의 낭만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군 제대 후, 저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신림사거리의 만화학원을 다녔습니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는 금세 친해졌죠. 좋아하는 만화, 존경하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도록 이어졌습니다. “베르세르크, 슬램덩크, 드래곤볼, 어떤 작가의 화풍은 어떻고, 어떤 작가의 기교는 어떻고…”, “누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지, 어떤 장면에서 어떤 연출을 썼는지, 그 장면에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는지…” 마치 평론가라도 된 듯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정말 진지했거든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희는 그림 연습보다는 노는 데 더 정신이 팔려있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으로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로 결심했죠. 각자 유명한 만화가 선생님의 문하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렵사리 수소문해서 저 역시 정말 유명한 선생님의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혹독했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 겨우 잠을 자면서, 정말 힘겨운 나날들을 보냈죠. 펜촉이 부러지는 소리,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마시던 커피의 쓴맛, 열린 창문 틈사이로 느껴지던 새벽의 차가운 공기…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결국 저는 얼마 못 가서 문하생 생활을 포기하고, 원래 전공으로 돌아왔습니다. 만화가를 꿈꾸며 허송세월을 보낸 시간은 1년 남짓이었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제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요즘 가끔 그때 생각이 납니다. 흐릿한 전등 불빛 아래, 원고지를 밝혀주는 라이트박스가 있고, 그 위에 놓인 원고지를 스쳐 지나가는 펜의 사각거리는 소리… 밤늦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고스트 스테이션의 신해철 님 목소리까지, 모든 게 어제 일처럼 선명합니다. 만약 그때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요? 지금쯤 밥은 제대로 먹고 살고 있을까요? 아마 힘들었겠죠. 문제는 열정의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모시던 실력파 선생님의 빠듯한 삶을 직접 목격했거든요. 어시스트, 문하생인 저희의 박봉… 좋아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도, 평범한 삶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이런 건가?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바라는 삶인가?’ 이 질문이 제 내면을 끊임없이 갉아먹었습니다.

저는 죽어라 노력해도 그 선생님의 발끝조차 따라잡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조차 이렇게 팍팍한 삶을 살고 계시는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제 기준에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큰 욕심이 없어. 나는 그저 남들 출근할 때 출근하고, 퇴근할 때 퇴근하는, 평범한 삶을 원해.’ 그렇게 저는 제 자신을 설득하며 치열한 만화계에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 ‘평범함’을 찾아 첫 직장으로 간 저의 이야기는 팟캐스트 첫 에피소드에서 말씀드렸죠. 거기서도 저는 2년 반을 거의 매일 야근과 철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꿈을 포기하고 찾아온 ‘평범한 세상’ 역시 별반 다를 바 없었던 거죠.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결국 저는 더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운 좋은 삶이었다 싶습니다. 힘들었지만, 얻은 것도 많았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지금도 가끔 그 시절, 밤을 새며 그림 그리던 순간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그 사각거리는 펜 소리, 깊은 한밤중의 고요함, 라디오에서 들려나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꿈을 좇아 온전히 몰입하던 그 순간들… 제가 그토록 가지고 싶었지만, 결국 두려움에 놓쳐버렸던 저의 꿈들…

돌이켜보면, 저는 ‘눈에 보이는 삶의 모습’이라는 허상에 쫓겨 꿈을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안정적인 삶, 남들이 인정하는 직업… 그런 것들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힘든 삶이 싫어 스스로를 합리화 시켰던 걸까요? 그게 무엇이든 진정으로 제가 원했던 것을 외면했던 거겠죠. 물론 후회는 없습니다. 그 뒤로도 제겐 소중한 순간들이 많았으니깐요.

하지만 가끔은, 그 시절의 뜨거웠던 열정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렸다면 만화가가 될 수 있었을까?’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애초에 답은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그 시절의 소년을 마음속 한 켠에 두고서, 깊이 내려앉은 이 밤과 함께, 감상에 빠져봅니다. 여러분도 잠 못 이루는 밤, 과거의 낭만을 떠올리며 작은 위로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인생잡담,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에피소드에서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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